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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종무열왕본기(太宗武烈王本紀)

云石 2020. 5. 13. 15:55



太宗武烈王本紀

 

諱春秋壽五十九伊飡龍春子真智王孫母天明夫人金氏真平王女

妃文明夫人金氏文姬蘇判舒玄季女

甲寅元年(唐永徽五年)四月追封考龍春為文興王母金氏為文貞太后大赦

五月命理方府詳酌律令六十餘條

二年正月高句麗與百濟靺鞨連兵侵軼我北境王遣使入唐請援立元子法敏偽太子立鼓樓於月城内

三年築獐山城

七年三月唐命蘇定方等帥水陸三萬伐百濟王與庾信等領兵出京六月次南川停定方發自萊州舳艫

千里隨流東下王遣太子法敏領兵船一百艘迎定方於德物浦

七月唐羅軍圍百濟都城濟王義慈率左右夜遁保熊津城義慈子隆先降義慈率太子及熊津方領軍來降

王遣弟監天福等露布於唐

八月大置酒勞將士唐分百濟故地置熊津馬韓東明金漣德安五都督府令郎將劉仁願以兵一萬留鎮

泗沘城定方獲百濟王及王族臣僚九十三人百姓一萬二千人回唐王率太子諸軍返國百濟國遂絕

既破百濟論功賞賜有差百濟降人幷量才任用蘇定方以義慈見帝責以宥之且謂定方曰何不因以伐

新羅定方曰新羅其君仁而愛民其臣忠而事君下之事上如父兄不可謀也

八年唐又遣蘇定方領水陸三十五道兵伐高句麗六月王薨上諡武烈廟號曰太宗文武王立姿表英特

聰明多智略葬先王于永敬寺北(今西岳)

 


태종무열왕본기(太宗武烈王本紀)

 

이름은 춘추(春秋)이요 수()五十九成였다. 이찬(伊飡) 용춘(龍春)의 아들이요

진지왕(眞智王)의 손()이며 어머니는 천명부인(天明夫人) 金氏요 진평왕(眞平王)의 따님이다.

()는 문명부인(文明夫人) 金氏 이름은 문희(文姬)이니 소판(蘇判) 서현(舒玄)

막내따님이다

갑인 (唐 永徽 五西紀 六五四) 월에 돌아가신 아버지 용춘(龍春)을 추봉(道封)하여

문흥왕(文興王)을 삼았고 어머니 金氏를 추봉(道封)하여 문정대후(文貞太后)

삼았으며 죄수를 크게 석방하였다.

월에 이방부(理方府)에 문부를 내려 율령(律令) 六十餘條를 소상히 참작(參酌)하게 하였다.

월에 고구려가 백제와 말갈(靺鞨)로 더불어 군사를 연합(聯合)하여 북쪽

변경(邊境)을 침범하거늘 임금께서 나라에 사신을 보내어 구원(救援)을 청하였다.

원자(元子) 범민(法敏)을 세워 태자(太子)를 삼았고 월성안에 고루(鼓樓)를 세웠다.

년에 장산성(獐山城)을 쌓았다.

월에 나라에서 소정방(蘇定方) 등에게 명()하여 수륙군 十三萬名을 이끌고

백제를 정벌(征伐)하거늘 임금께서 유신(原信) 등으로 더불어 군사를 거느리고 서울을

출발하여 월에 남천정(南川停:이천(利川))에 당도했다.

소정방(蘇定方)이 내주(萊州)에서 출발하여 함선(艦船)千里에 연달았고 조류(潮流)

따라 동쪽으로 내려오니, 임금께서 태자 법민(法敏)을 보내어 병선(兵船) 一百척을

거느리고 소정방을 덕물포(德物浦:덕적도(德積島))에서 영접(迎接)하였다.

월에 당라연합군(唐羅聯合軍)이 백제(百濟)의 도성을 에워싸거늘 백제의 임금

의자왕(義慈王)이 좌우를 이끌고 밤에 도망하여 웅진성(熊津城:공주(公州)) 으로 들어갔다.

의자왕(義慈王)의 아들 융()이 먼저 항복하였고 의자왕(義慈王)도 태자와 융진(熊津)

방영군(方領軍)을 이끌고 와서 항복하니임금께서 제감(弟監) 천복(天福) 등을 나라에

보내어 승전(勝戰)을 보고하였다.

월에 큰 잔치를 베플어 장사(將士)들의 수고를 위로(慰勞)하였다.

나라에서 백제(百濟)의 옛 땅을 나누어 웅진(熊津 ) 마한(馬韓) 동명(東明) 금연(金運)

덕안(德安) 등 오도독부(五都督府)를 설치하고 낭장(郎將) 유인원(劉仁願)으로 하여금

군사 一萬名을 거느리고 사비성(四洪城)에 주둔(駐屯) 하게하였다.

소정방은 백제왕과 왕족(王族) 및 신료(臣條)九十三人과 백성一萬二千人을 획득(獲得)하여

나라로 돌아갔고 임금께서는 태자(太子)및 여러 군사를 이끌고 경주로 돌아오니,

백제국이 드디어 멸망하였다.

이미 백제를 파()하매 훈공(勳功)을 논()하여 상사(賞賜)에 차등이 있었고 백제의

항복한 사람들은 모두 그 재능(才能)에 의하여 벼슬에 임용(任用)하였다.

소정방이 의자왕(義慈王)으로 하여금 황제(皇帝)에게 알현(謁見)하게 하니 그 허물을

책망하여 관대(寬大)히 용서해 주었고 또 소정방에게 말하기를, 어찌 인하여 신라를

정벌(征伐) 하지 않았는가? 하니정방이 대답하기를, “신라는 고 임금이 인자()하여

백성을 사랑하고 그 신하는 충성으로 임금을 섬기며 아랫사람이 윗사람섬기기를 부형과

같이 하니 도모(圖謀)할 수 없습니다“. 라고 하였다.

년에 나라에서 또 소정방을 보내어 수륙 三十五道의 군사를 거느리고 고구려를

정벌(征伐)하였다.

월에 임금이 훙() 하거늘 시호를 무열(武烈)로 올리고 묘호(廟號)는 태종이라 하였다.

문무왕(文武王)이 즉위하니 풍채(風采)가 영특(英特)하고 총명(聰明)하여 지략(智略)

많았으며 선왕을 영경사(永敬寺:지금의 서악(西岳)) 북쪽에 장사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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