真德王本紀
諱勝曼眞平王母弟葛文王國飯女母月明夫人朴氏
戊申二年 (唐貞觀二十二年)改元太和十月百濟兵圍茂山甘勿桐岑三城遣金庾信奮
擊斬首三千餘級十一月親祀神宮
○二年三月遣伊飡金春秋(武烈王諱)如唐請攻百濟太宗聞春秋之奏對雍容歎曰誠君子之國百濟
侵西邊陷要車等十餘城遣庾信擊之追北殺之幾盡
○三年正月始服中國衣裳八月百濟攻陷石吐等城命庾信追擊大敗之殺虜將士一百人斬軍卒八千
九百八十級獲戰馬三萬匹至若兵仗不可勝數
○四年四月下教以真骨在位者執牙笏(王及宗姓前稱聖骨至是稱真骨王族謂第一骨貴族第二骨)
六月遣使如唐告破百濟王織錦作五言太平頌以獻其辭曰大唐開洪業魏巍皇猷昌止戈戎衣定修文
繼百王統天崇雨施理物體含章深恩偕日月撫運邁時康幡旗何赫赫鉦鼓何煌煌外夷違命者剪覆
被天殃淳風凝幽顯遐邇競呈祥四時和玉燭七曜巡萬方維嶽降宰輔維帝臨忠良三五成一德昭我
唐家皇高宗嘉焉是歲始行中國永徽年號
○五年正月朔王御朝元殿受百官正賀賀正之禮始此
○八年三月王薨上諡真德太宗武烈王立儀表英偉幼有濟世志事真德王位歷伊飡唐帝授以特進及
真德王薨羣臣請伊飡閼川攝政閼川固讓曰臣老矣無德行可稱今之德望崇重莫如春秋公實可謂
濟世英傑遂奉立為王三讓不得已而就位葬真德王於沙梁部(今五柳府西十里)
진덕왕본기(眞德王本紀)
이름은 승만(勝曼)이니 진평왕(眞平王)의 모제(母弟) 갈문왕(葛文王) 국반(國飯)의 따님이며
어머니는 월명부인(月明夫人)이다.
무신 二년(唐 貞觀 二二년 西紀 六四八년)에 연호(年號)를 대화(大和)로 고쳤다.
수월에 백제의 군사가 무산(茂山) 감물(甘勿) 동잠(棟岑) 세 성(城:충주지방)을 에워
싸거늘 김유신(金原信)을 보내어 이를 요격(邀擊)하여 三千餘級을 참수(斬首)하였다.
十一월에 친히 신궁(神宮)에 제향(祭享)을 올렸다.
○二년 三월에 이찬(伊飡) 김춘추(金春秋:무열왕(武烈王)의 이름)를 당(唐)나라에
보내어 백제 공격하기를 청하니, 당대종( 太宗)이 춘추(春秋)의 주대(奏對:아뢰고 대답함)가
온화하고 조용함을 듣고 참으로 군자(君子)의 나라라고 탄복(數服)하였다.
백제가 서쪽 변방(邊方)을 침범(侵犯)하여 요거(要車:상주지방)등 十餘城을 함락하거늘
유신(原信)을 보내어 이를 반역(反擊) 하고 패군(敗軍)을 추적하여 거의 모두 섬멸(滅滅)
하였다.
○三년 正월에 비로소 중국(中國)의 의복을 착용하였다.
八월에 백제가 석토(石吐) 등 성(城)을 쳐서 함락하거늘 유신(原信)을 시켜 추적(追擧)하여
크게 치고 장사(將士) 一百人을 혹은 죽이고 혹은 사로 잡았으며 군졸(軍)八千九百八十을
참수(斬首)하였고 전마(戰時) 三萬匹을 노획(鹵獲)했으며 병기(兵器)에 이르러서는 이루 셀
수도 없었다.
○四년 四월에 분무를 내려 진골(眞骨)로서 벼슬에 있는 자는 상아홀(象牙笏)을 갖게
하였다.
(임금과 종성(宗姓)은 전에는 성골(聖骨)이라 일컬었는데 이에 이르러 진골(眞骨)이라
일컬었으며 왕족(王族)은 제일골(第一骨)이라 이르고 귀족(貴族)은 제이골(第二骨)이라
일컬었음.)
六월에 사신(使).臣)을 당(唐)나라에 보내어 백제(百濟)와 싸워 승전( 勝戰) 함을 고(告)하였다.
임금께서 손수 비단을 짜서 오언태평송(五言太平頌)을 지어 올렸으니 그 가사(歌詞)에
이르기를,
당(唐)나라에서 큰 업적(業績) 열었으니,
또 높은 계책(計策) 국가(國家) 창성했도다.
전쟁(戰爭) 스치니 군사들 안정(安定)되었고,
문화정치(文化政治) 베푸니 일백 왕을 계승(繼承)했노라.
하늘 본받았으니 상서의 비 흡족하였고,
만물(萬物) 다스렸으니 환한 문채 머금었어라.
은혜 깊었으니 일월(日月)과 함께 하였고,
운수(運數)에 순종했으니 태평시대(太平時代) 이룩하였네.
번뜩이는 깃발 어이 그리 선명(鮮明)하며,
징(銀)과 북(鼓) 소리 어이 스리 우렁찬고?
명령(命令) 어기는 외방(外方) 오랑캐는,
멸망(滅亡)하여 하늘의 앙화 입었노라.
순박(厚朴)한 풍속 유명(幽明)에 어리었는데,
원근(遠近)에서는 다투어 상서(祥瑞)의 징조 올렸어라.
사시(四時)의 절후( 節侯)는 밝은 덕(德)에 응(應)하였고,
일월(日月)과 오성(五星:金木水火土)은 만방(萬方)에 고루 비쳤도다.
오직 산악(山岳)의 정기 받아 재상(宰相) 태어났고,
오직 높으신 상제(上帝)께서는 어진 사람에게 임(臨) 하셨도다.
①삼황(三皇)과 오제(五帝) 한 덕(德)으로 이룩했으니,
우리 唐나라 황제(皇帝)에 광명(光明)이 깃들리로다.
라고 했으니, 당고종(唐高宗)이 가상(嘉尙)히 여겼다.
이 해에 비로소 중국의 영휘연호(永徽年號)를 시행하였다.
○五년 正월 一일에 임금께서 조원전(朝元殿)에 납시어 백관(百官)의 하정(質正)을 받았으니﹐
하정(賀正)의 예절(禮節)이 이에서 시작되었다.
○八년 三월에 임금이 훙하거늘 시호(諡號)를 진덕(眞德)으로 올리고 태종 무열왕(武烈王)이
즉위했으니 의표(儀表)가 영명(英明)하였고 어려서부터 세상을 구제(救濟)할 뜻이 있었으며
진덕왕(眞德王)을 섬겨 벼슬이 이찬(伊飡)에 이르렀고 나라 황제(皇帝)가 특진관(特進官)을
제수(除授)하였다.
진덕왕(眞德王)이 흉함에 미쳐 여러 신하가 이찬(伊飡) 알천(閼川)에게 섭정(攝政)을 청하니
알천(閼川)이 굳이 사양하여 말하기를, 「신(臣)은 늙었고 이렇다 할 덕행(德行)이 없으며
지금 융숭(隆崇)한 덕망(德望)이 춘추공(春秋公)같은 분이 없으니 진실로 세상을 구제(救濟)할
영걸(英傑)이라. 하고 드디어 받들어 임금을 삼으니 세 번 사양하고 부득이(不得已) 하여
왕위(王位)에 올랐으며 진덕왕(眞德王)을 사량부(沙梁部) (지금 오류부(五柳府) 서쪽 十里)에
장사하였다.
주(註)
삼황(三皇):中國古代의 어진 임금이니 복희(伏羲) 신농(神農) 황제(皇帝)를 말함.
오제(五帝):三皇의 뒤를 이어 다섯 어진 임금이 계승했으니 소호(少昊) 전욱(顓頊)
제곡(帝嚳) 요(堯) 순(舜)이다.
'그룹명 > 崇惠殿' 카테고리의 다른 글
| 文武王本紀 (0) | 2020.05.13 |
|---|---|
| 태종무열왕본기(太宗武烈王本紀) (0) | 2020.05.13 |
| 선덕왕본기(善德王本紀) (0) | 2020.05.13 |
| 진평왕본기(眞平王本紀) (0) | 2020.05.13 |
| 진지왕본기(眞智王本紀) (0) | 2020.05.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