智證王本紀
諱智大路或云智度路又云智哲老壽七十八習寶子奈勿王曾孫母鳥生夫人金氏訥祗王女
○妃延帝夫人朴氏伊飡登欣女
壬午三年 齊中興二年 三月禁殉葬 前此國王葬則殉以男女各五人 親祀神宮三月分命
州郡主勸農始用牛耕
○四年十月羣臣上言始祖創業以來國名未定或稱斯羅或稱斯盧或言新羅臣等以為新者
德業日新羅者網羅四方之義則其為國號宜矣又觀自古有國家皆稱帝稱王自我始祖立國
至今二十二世但稱方言未定尊號今羣臣一意謹上新羅國王王從之
○五年四月制喪服法頒行九月築波里彌實珍德火骨等十二城
○六年二月王親定國內州郡縣置悉直州十二月始命有司藏氷又制舟楫之利
○七年春夏旱民飢發倉賑之
○十年正月置京都東市三月設檻穽以除猛獸之害
○十三年造木偶獅子載船威嚇于山國國人恐懼降
○十五年正月置小京於阿尸村七月徙六部人戶以實之是月王薨上諡智證法興王立身長七尺
寬厚愛人一按始祖號居西干辰人稱王之語或云呼貴人之稱南解號次次雄或云慈充金大問
云次次雄方言謂巫也世人以巫事鬼神故畏敬之遂稱尊者謂慈充自儒理至實聖號尼師今齒理
之稱自訥祗至炤智號麻立干金大問曰麻立方言謂橛也橛謂誠操準位而置則王橛為主臣橛列
於下因以名之至是始稱王有諡法
지증왕본기(智證王本紀)
이름은 지대로(智大路) 혹은 지도로(智度路)라 하며 또 지철로(智哲老)라고도 하니 수(壽)는
七十八歲이다. 습보(習實)의 아들이요 내물왕(奈勿王)의 증손(曾孫)이며 어머니는 오생부인(烏
生夫人) 金氏이니 눌지왕(訥祗王)의 따님이다.
○비(妃)는 연제부인(延帝夫人)朴氏이니 이찬(伊飡) 등흔(登欣)의 따님이다.
임오 三년 齊 中興二년 西紀 五〇二 삼월에 순장(殉葬:이에 앞서 국왕(國王)의 장사(葬事)
에는 남녀(男女) 각 五人으로서 순장(殉葬)하였음.)을 금지하였고 신궁(神宮)에 친히 제향(祭享)을
올렸다. 三월에 여러 고을의 군주(郡主)에게 나누어 분부하여 농사를 권장(勸獎)하게 했고
전답(田畓)의 경작(耕作)에 비로소 소(牛)를 사용하였다.
○四년十월에 여러 신하들이 아뢰기를, 시조(始祖)께서 창업(創業)한 이래로 나라의 이름이
정해지지 아니하여 혹은 사라(斯羅)라 이르고 혹은 사로(斯盧)라 이르며 혹은 신라라고
이르는데﹐
신등의 생각에는 신(新)은 덕업(德業)이 날로 새롭다는 뜻이옵고 라(羅)는 사방을
망라(網羅)한다는 뜻이옵니다. 그러므로 국호(國號)를 신라로 하는 것이 옳겠나이다.
또한 살피옵건데 예로부터 국가(國家)를 통치(統治)하는 자는 모두 제(帝) 또는 왕(王)이
라고 청호(稱號) 하옵니다.
우리 시조(始祖)의 나라를 세움으로부터 지금까지 二十二世를 전해오는데 다만 방언(方言)을
일컬을 뿐이요 존호(尊號)는 정하지 못했으니 이제 여러 신하들이 한 마음으로 삼가
신라국왕으로서존호(尊號)를 올리옵니다. 하니, 임금께서 이를 쫓았다.
○五년 四월에 상복법(喪服法)을 마련하여 반포(頒布)하였다. 九월에 파리(波里:삼척) 미실(彌實:흥해)
진덕(珍德) 화골(火骨:영천)등 十二城을 쌓았다.
○六년 二월에 임금께서 나라 가운데에 주·군·현(州郡縣)을 친히 정하고 실직주(悉直州:삼척)
설치 하였다.
十二월에 비로소 유사(有司)에게 문부를 내려 얼음을 저장(貯藏)하게 하고
또 배(舟楫)를 지어 편리를 도모하게 하였다.
○七년에 봄부터 여름까지 가뭄이 계속하여 백성이 굶주리거늘 창곡(倉穀)을 들어
진휼(脈)하였다.
○十년 正월에 서울의 동쪽에 시장을 설치하였다. 三월에 함정(檻穽)을 만들어 맹수(猛獸)의
해(害)를 제거(除去)하였다.
○十三년에 나무로 허수아비 사자(獅子)을 만들어 배에 실리고 우산국(于山國:울릉도)을
위혁(威嚇) 하니 나라 사람들이 두려워하여 항복하였다.
○十五년 正월에 작은 서울을 아시촌(阿尸村)에 설치하고 七월에 육부의 주민을 옮겨 채웠다.
이 달에 임금이 흉하였다.
시호(諡號)를 지증(智證)으로 올리고 법흥왕(法興王)이 즉위(配位)하니 신장(身長)이 七尺이요,
관후(寬厚)하여 사람을 경애(敬愛)하였다.
상고하건데 시조(始祖)의 호는 거서간(居西干)이니 동방 사람들이 왕을일컫는 말이요﹐
혹은 귀인(貴人)을 부르는 칭호(神號)라고도 하였다.
남해왕(南解王)의 호(號)는 차차웅(次次雄)이니, 혹은 자충(慈充) 이라고도 하였다.
김대문(金大問)이 이르기를, 차차웅은 방언(方言)에 무당(巫)이니 무당이 귀신을 섬기므로
세상 사람들이 두려워하고 공정하여 드디어 존자(尊者)를 일컬어 자충(慈充)이라 한다. 고
하였다. 유리왕(儒理王)으로부터 실성왕(實聖王)에 이르기까지는 이사(尼師)라고 호(號)했으니
지금 치리(齒理)의 칭호(稱號)요, 눌지왕(訥祗王)으로부터 소지왕(炤智王)에 이르기까지는
마립간(麻立干)이라고 호(號) 하였다. 김대문(金大問)이 이르기를, 「마립(麻立)은 방언
(方言)에 말뚝이요 말뚝은 함조(諴操)라고도 이르니 자리를 준(準)하여 앉힌다면 왕의 말뚝은 주(主)가
되고 신하의 말뚝은 아래에 열(列)지어 있으므로 인하여 이름했다. 고 하였다.
이에 이르러 비로소 왕(王)이라 일컫고 시호(諡號)의 법이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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