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명/崇惠殿

소지왕본기(炤智王本紀)

云石 2020. 5. 11. 16:23
炤知王本紀



諱炤知慈悲王長子

妃善兮夫人金氏伊伐飡乃宿女一作奈勿王孫習實女

己未元年 (宋 昇明三年) 大赦賜百官爵一級

二年二月親祀始祖廟十一月民飢發倉穀脈給之

三年二月幸化列城存撫軍士賜征袍三月高句麗與靺鞨入北邊取狐鳴等七城又進軍於彌夫

我軍與百濟援兵分道禦之賊走進擊破之泥河西斬首千餘級

五年十月幸一善界存問溝灾百姓賜殺有差

六年七月高句麗侵北邊我軍與百濟合擊之母山城下大破之

七年築仇伐城四月親祀始祖廟增置守廟二十家五月百濟來聘

八年正月拜伊飡實竹為將軍徵一善丁夫三千改築三年屈山二城二月以金乃宿為伊飡

參知政事八月大閱於狼山之南

九年二月置神宮於奈乙奈 (乙始祖初生之處) 三月始置四方郵驛命有司修理官道葺月城

十年正月移居月城二月幸一善郡存問四窮賜穀有差三月至自一善歷州郡獄囚除殊死悉原

之東陽獻六眼龜腹有文字七月築刀那城

十一年驅遊食民歸農

十二年二月重築鄙羅城三月龍見鄒羅井初開市肆以通四方之貨

十四年春夏旱王責己減膳

十七年正月王親祀神官

十八年伽倻獻白維三月重修宮室七月高句麗來功牛山城遣將軍實竹出擊泥河上破之八月

幸南郊觀稼

十九年七月命羣臣舉才堪牧民者各一人

二十二年四月龍見金城井十一月王薨無子再從弟智證王嗣位時年六十四歲形體鴻大膽力過人

 

소지왕본기(炤智王本紀)


이름은 소지(炤智)이니 자비왕(慈悲王)의 장자(長子)이다.

()는 선혜부인(善兮夫人) 金氏이니 이벌찬(伊伐飡) 내숙(乃宿)의 따님이요.

一說에는 내물왕(奈勿王)의 손자 습보(習寶)의 따님이라고 했다.

기미 (宋 昇明三西紀 七九) 대사(大赦)를 하였고 백관(百官)에게 벼슬 一級

올려 주었다.

월에 시조묘(始祖廟)에 친히 제향(祭享)을 올렸다. 十一월에 백성이 굶주리거늘

창고의 곡식을 들어 진휼(賑恤)하였다.

월에 화열성(化列城:안변(安邊))에 수행하여 군사를 위무(慰撫)하고 정포(征袍:

군복)를 하사(下賜)하였다. 월에 고구려(高句麗)가 말갈(靺鞨)과 더불어 북쪽 변방에

침입하여 호명(狐鳴:청송(靑松))등 일곱 성()을 함락(陷落)시키고 또 미부(彌夫:흥해

(興海)에 진군(進軍) 해 들어왔다. 이에 우리 군사가백제(百濟)의 구원군(救援軍)

더불어 길을 나누어 방어(防禁)하니, 적병(賊兵)이 달아나거늘 진격(進擊)하여 깨뜨려치고

이하(泥河:강릉(江陵))의 서쪽에서 일천여급(一千餘級)을 참수(斬首)하였다.

월에 일선(一善:선산(善山))의 경계(境界)에 순행하여 이재민(罹災民)

위문(慰問)하고 곡식을 나누어 주되 재해의 등분(等分)에 따라 차등(差等)을 두었다.

월에 고구려(高句麗)가 북쪽 변방을 침범하거늘 우리 군사가 백제(百濟)

원병(援兵)과 더불어 협격(挾擊)하여 모산성(母山城:진천(鎭川)) 아래에서 대승(大勝)

거두었다.

년에 구벌성(九伐城)을 쌓았다. 월에 시조묘에 친히 제향(祭享)을 올리고 사당을

수호(守護)하기 위하여 二十戶를 증치(增置)하였다. 월에 백제가 내빙(來聘) 하였다.

월에 이찬(伊飡) 실죽(實竹)으로서 장군(將軍)을 삼고 일선(一善政)

군정(軍丁) 三千名을 징발(徵發)하여 삼년(三年:보은(報恩))과 굴산(屈山:청산(靑山))

()을 개축(改築)하였다.월에 김내숙(金乃宿)으로서 이찬(伊飡)을 삼아 정사(政事)

참여(參與)하게 하였다. 월에 낭산(狼山:경주)의 남방에서오게 군사를 사열(査問)하였다.

월에 신공(神宮)을 내을(奈乙:내을은 시조가 처음 탄생한곳)에 설치(設置)하였다.

월에 비로소 사방에 우역(郵驛)을 설치하고 유사(有司)에게 분부하여 관도(官道)

수리(修理)하며 월성(月城)을 보수(補修)하게 하였다.

월에 월성(月城)으로 이어(移御)하였다. 월에 일선군(一善郡)에 수행하여

사궁(四窮:환과 고독(鰥寡 孤獨))을 위문하고 곡식을 하사하되 형편에 따라 차등(達等)

두었다. 월에 일선(一善)으로부터 여러 고을을 지나면서 죄수()가운데 사형수(死刑囚)

제외(除外)하고 모두 석방(釋放)하였다. 동양(東陽)에서 여섯 눈이 달린 거북을 바쳤는데

배에는 의 자형(字形)이 있었다. 월에 도나성(刀那城)을 건축(建築)하였다.

十一년에 놀고 먹는 백성을 몰아내어 농업(農業)에 종사하게 하였다.

十二월에 비라성(鄙羅城)을 증측하였다. 월에 용()이 추라정(鄒羅井:경주

남쪽)에 나타났다.

처음으로 시장(市場)을 열어 사방(四方)의 물화(物質)를 서로 유통하게 하였다.

十四년에 봄부터 여름까지 한발(旱魃)이 계속되므로 임금께서 스스로 정사를 반성하고

아을러 먹는 반찬을 평소때 보다 감하였다.

十七월에 임금께에 신궁(神宮)에 친히 제향을 올렸다.

十八년에 가야(伽倻)에서 흰 꿩을 바쳤다. 월에 궁실(宮室)을 중수하였다.

월에 고구려에서 우산성(牛山城)을 침공(侵攻) 하거늘 장군 실죽(實行)을 보내어

이하(泥河:강릉)의 위에서 격파(擊破) 하였다월에 남교(南郊)에 순행하여 농형(農形)

살펴 보았다.

十九월에 여러 신하에게 분부하여 재주가 수령(守令)의 직책을 감당할 수 있는 자

一人씩을 천거(薦擧)하게 하였다

二十二월에 금성의 우물에서 용()이 나타났다.

十一에 왕이 훙하시고 아들이 없으매 재종제(再從弟) 지증왕(智證王)이 왕위(王位)를 계승

했으니 나이 六十四歲이며 형체(形體)가 장대(長大)하고 담력(膽力)이 월등(越等)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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