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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흥왕본기(眞興王本紀)

云石 2020. 5. 11. 16:32


真興王本紀

 

諱彡麥宗或作深麥夫壽四十三葛文王立宗子智證王孫母息道夫人金氏法興王女

妃思道夫人朴氏

庚申元年(梁 大同六年) 八月大赦賜文武官爵一級

六年七月廣集文士居漆等撰國史

十一年正月取高句麗道薩城及百濟金峴城增築留甲士一千戌之

十二年正月改元開國取高句麗十郡

十四年二月築新宮於月城東黃龍見其地王疑之改號為佛寺七月取百濟東北鄙置新興十月

取百濟王女為小妃

十五年七月修築明活城百濟來攻管山城令新州軍主金武力急擊殺百濟王斬將卒二萬九千

六百餘人匹馬無返者

十六年置完山州於比斯伐十月王巡幸北漢山拓定封疆十一月至自北漢山所經州郡復一年

租調曲賜除二罪皆原之

十七年七月置比列忽州以國原為小京

十八年二月徒貴戚子弟及六部豪民以實國奈麻新得作砲弩置于城

二十三年七月百濟侵掠邊戶王出師據之殺獲千餘人九月伽倻叛命將率千騎入栴檀門伽解盡降

二十七年立子銅輪為太子

二十九年改元大昌

三十三年正月改元鴻濟三月太子卒

三十七年春置花郎 (君臣患無以知人欲使類聚羣遊觀其行義舉用之逐簡美女二人奉為源花一曰南毛二曰俊貞聚徒三百餘人爭娟相如俊貞置酒私第强勸南毛酒醉殺之其徒以告俊貞伏誅逐廢源花取美男子粧飾之名曰花郎其徒日衆或道義相磨或歌樂相悦游娛山水無遠不至歲月既久邪正可見矣擇其譽望者用之)

八月王薨上諡真興真智王立葬先王于哀公寺北峯(今西岳府西五里)

 

진흥왕본기(眞興王本紀)

 

이름은 삼맥종(彡麥宗)이요 혹은 심맥부(深麥夫)라고도 했으니, ()四十三歲였다.

갈문왕(葛文王) 입종(立宗)의 아들이요 지증왕(智證王)의 손자이며 어머니는 식도부인

(息道夫人) 金氏이니, 법흥왕(法興王)의 따님이다. ()는 사도부인(思道夫人) 朴氏이다.

경신 (梁 大同六西紀 五四) 월에 죄수를 크게 석방하였고 문무관(文武官)

벼슬 一級을 승진(昇進)시켰다.

년 월에 문사(文士) 거칠(居漆) 등을 널리 선발(選拔)하여 국사(國史)를 찬술(撰述)하였다.

十一월에 고구려(高句麗) 도살성(道薩城)과 백제 금현성(金現城)을 취()하여

()을 증축(增築)하고 갑사(甲士) 一千名을 보내어 주둔(駐屯) 하게 하였다.

十二월에 연호(年號)를 개국(開國)으로 고쳤고 고구려 열고을을 탈취(奪取)하였다.

十四월에 신궁(新宮)을 월성의 동쪽에 건축했는데 황룡(黃龍)이 그 땅에 나타났으므로 임금께서 의심하고 칭호를 바꾸어 불사(佛寺)를 삼았다. 월에 백제의 동북방 변읍(邊邑)을 탈취(奪取)하여 신흥현(新興縣)을 설치(設置)하였다. 월에 백제(百濟)의왕녀(王女)()하여 소비(小妃)를 삼았다.

十五월에 명활성(明活城)을 수축(修築)하였다. 백제(百濟)가 관산성(管山城)

침공(侵攻)하거늘 신주군주(新州軍主) 김무력(金武力)으로 하여금 급히 습적(農事)하여

백제왕을 죽이고 장졸(將卒) 二萬九十六百餘人을 베니, 말 한필도돌아간 것이 없었다.

十六년에 비사벌(比斯伐:창녕(昌寧))에 완산주(完山州)를 설치(設置)하였다.

월에 임금께서 북한산(北漢山:경기도 고양) 을 순행 (巡幸)하여 국도(國土)

경계선(境界線)을 확장(擴張)하였다.

十一월에 북한산(北漢山)으로부터 돌아오는 역로(歷路)의 고을에 1년의 조()와 조(調)

면제(免除)하고 이죄(二罪)를 제외(除外) 하고는 모두 사죄(放光)하는 각별한 은전(恩典)내렸다.

十七월에 비열홀주(比列忽州:안변(安邊))를 설치하고 국원(國原:충주(忠州)) 으로서 작은 서을을 삼았다.

十八월에 귀척(貴戚)의 자제(子弟)와 육부(六部)의 부호(富豪)를 옮겨 극원(國原)

채웠으며 내마(奈馬) 신득(新得)() 와 쇠뇌를 지어 성()에 설치하였다.

二十三월에 백제가 변방(邊方)의 고을을 침략하거늘 임금께서 군사를 보내어

방어(防禦)하여 여명을 참획(斬獲)하였다.

월에 가야(伽倻)가 반란(坂亂)을 일으키거늘 장수(將帥)를 시켜 기병(騎兵) 一千명을 이끌고 전단문(旃檀門)에 처들어가니 가야(伽倻)가 모두 항복하였다.

二十七년에 아들 동륜(銅輪)을 세워 태자(太子)를 삼았다.

二十九년에 연호(年號)를 대창(大昌)으로 고쳤다.

三十三월에 연호(年號)를 통제(鴻濟)로 고쳤다. 월에 태자(太子)가 졸()하였다.

三十七년 봄에 화랑(花郞)을 창설(附設)하였다.

(임금과 신하가 인재(人材)를 알 수 없음을 걱정하여 여러 사람이 떼를 지어 상종(相從)하게 하고 그 행검(行檢)을 보아 등용(登用)할 계획을 하였다. 드디어 아름다운 여자 두 사람을 간발(簡拔)하여 원화(源花)를 삼았는데 하나는 남모(南毛)요 하나는 준정(俊貞)이니

그 도당(徒黨) 三百餘人을 모았는데 그 미모(美貌)를 다투어 서로 시기(猜忌)하다가

준정(俊貞)이 자기 집에 술을 갖추어 놓고 남모(南毛)에게 억지로 권()하여 술이 취하매

이를 살해(殺害)하였다.

그 무리가 이 사실(事實)을 관()에 고발하매 준정(俊貞)을사형(死刑)에 처()하였고

드디어 원화(源花)를 폐지(廢止)하였다.

이에 아름다운 남지를 신발(選拔)하여 그 몸을 치장(治粧)하고 화랑(花郞)이라 이름했으니, 그 무리가 날로 번성하였다.

혹은 도의(道義)를 서로 강구(講究)하고 혹은 풍류(風流)와 노래로서 서로 즐거워하며

명산대천(名山大川)을 발섭(跋涉)하여 먼 곳에 이르지 않음이 없었고 세월이 오래되매

정직(正直)함과 간사(太邪)함이 자연히 나타났으니 그 명망(名望)있는 자를 선택하여

등용(登用)하였다.)

월에 임금이 흉하거늘 시호(諡號)를 진흥(眞興)으로 올리고 진지왕(眞智王)이 즉위했으며 선왕을애공사(哀公寺) 북쪽 봉우리 (지금 서악부(西岳府) 서쪽 五里)에 장사하였다.


( )

이죄(二罪) : 일율(一律)에 해당한 참수형(斬首刑)과 차율(次律)에 해당한 교수형(發首刑)을 말한 것.

() : 지금의 대포(大禍)가 아니요 기계(機械)를 사용하여 돌을 발사(發射)하는

작용(作用)을 하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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