興德王本紀
諱秀宗或作秀昇改景徽憲德王母弟
○妃章和夫人金氏封定穆王后昭聖王女
丙午元年 唐寶曆二年 十二月王妃金氏卒追封為定穆王后
○二年親祀神宮
○三年四月王使萬人鎮清海是後海上無侵掠國人者漢山州瓠州縣妖人自言有速富貴
之術王聞之曰執左道惑衆者當刑流之遠島大廉入唐得茶子來王命植智理山
○七年旱避正殿減膳赦罪囚遣使按撫州郡
○八年四月謁始祖廟
○九月王幸西兄山下大閱御武平門觀射
十月巡幸國南州郡存問耆老及四窮賜穀有差教禁奢侈
○十年追封金庾信為興武王孫順至孝貧無以養母以兒奪母食乃欲埋兒掘地得石鐘為異負兒
將鐘歸撞鐘聲聞于王賜家歲給米
○十一年十二月王薨上諡興德僖康王嗣位以遺命合葬於定穆王后陵 今安康府北四十里
初興德王薨無嗣其堂弟均貞堂弟之子悌隆爭立金陽與均貞之子祐徵奉均貞為王入積板宮
悌隆之黨金明等來圍陽陳兵宮門拒之曰新君在此爾等何敢凶逆如此遂射殺數十人悌隆黨
裵萱伯射陽中股均貞曰彼衆我寡勢不可遏公其佯退以為後圖於是陽突圍而出至韓岐市
均貞被害陽潛遁明等立悌隆為王是為僖康王
흥덕왕본기(興德王本紀)
휘는 수종(秀宗) 또는 수승(秀昇)이었는데 경휘(景徽)로 고치었으니 헌덕왕의 아우이다.
○비는 장화부인(章和夫人) 김씨로 정목왕후(定穆王后)로 봉하였으니 소성왕(昭聖王)의
따님이다.
丙午 원년(唐) 보력 2년, 서기 826년) 12월에 왕비 김씨가 졸하니 정목왕후(定穆王后)라
추봉하였다.
○2년에 친히 신궁에 제사지냈다.
○3년 4월에 왕이 1만명을 동원하여 청해(淸海, 지금의 완도(莞島))에 진수(鎭守:튼튼히 지킴) 하니
그 후로는 해상에서 국인(國人)을 침략하는 일이 없어졌다.
한산주(漢山州:광주의 호주현(瓠州縣:))에 요인(妖人:정도(正道)를 어지럽힌 요사스런 사람)이 있어
부와 귀를(富貴)마음대로 얻을수 있다고 퍼트리니 왕이 듣고말하기를 사도(邪道)로
대중을 미혹(迷惑)케 하는 자는 형벌을 받아야 마땅하니 원도(遠島)로 내치라 하였다.
대렴(大廉)이 당나라에 들어갔다가 차씨(茶子)를 얻어오니 왕이 지리산(智理山:지리산)에
심으라 명하였다.
○7년 가뭄이 심하여 왕이 정전(正殿)을 피하고 찬수(饌需)를 감하고 죄수를 풀어주고
관원을 보내어 주군(州郡)을 안무(按撫:어루만져 위로 함)하였다.
○8년 4월에 시조묘를 배알하였다.
○9년 9월에 왕이 서형산(西兄山) 아래 납시어 대열(大閱:열병식)을 하고 무평문(武平門)에서
궁술대회(弓術大會)를 관람하였다.
10월에 남쪽 지방을 순행(巡幸)하면서 늙은이와 四궁(窮) 환과고독(解寡孤獨)을 위문하고
형편에 따라 식량을 하사하였으며 사치를 금하도록 교유하였다.
○10년 김유신(金庾信)을 흥무왕(興武王)으로추봉하였다.
손순(孫順)이 효성이 지극하나 가난하여 어머니를 봉양하기가 어려왔다.
아들을 하나 두었는데 매양 어머니의 잡수실 것을 뺏어먹으니 아이를 물어 버리기로 하고
땅을 팠더니 석종(石鐘)이 나왔다.
손순이 괴이히 여겨 아이를 업고 종을 메고 집에 돌아와 종을 쳐 보았는데 소리가 극히
청아하였다.
왕이 이 종소리를 듣고 영문을 물은 후에 세급미(歲給米)를 내리었다.
○11년 12월에 왕이 훙하니 흥덕(興德)이라 시호 올리고 희강왕(僖康王)이 이었으며,
유명으로 정목왕후능에 합장하였다. (지금의 안강부 북쪽 40리)
처음 흥덕왕이 흉하고 사자(嗣子)가 없으니 그 당제(堂形:종제) 균정(均)과 당질 제융(佛隆)이
자리를 다투니 김양(金陽)과 규정의 아들 우징(祐徵)이 규정을 왕으로 받들고 적판궁(積板宮)
에 들어갔다.
제융의 무리 김명(金明) 등이 쫓아와 궁을 에워싸니 김양이 궁문에다 병사를 풀어 막으면서
말하기를 “신왕이 여기 계시거늘 너희들이 어찌 감히 이토록 흉역한 짓을 하느냐” 하고
수십인을 사살하니 제융의 당 배훤백(裵萱伯)이 김양의 다리를 쏘아 맞추었다.
규정이 말하기를 “저들은 많고 우리는 적으니 막아내기 어려을 것 같소. 공은 잠시 물러났다
가 후일을도모함이 좋을 듯하오” 하여 김양은 포위를 뚫고 한기시(韓岐市)로 달아나고 규정은
해를 당하였다. 김명 등이 제융을 세워 왕을 삼으니 이가 희강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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