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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덕왕본기(宣德王本紀)

云石 2020. 5. 15. 18:10



宣德王本紀


諱良相海飡孝芳子奈勿王十世孫母四焰夫人金氏聖德王女

○妃具足夫人金氏角干良品女一云角干義恭女

庚申元年 唐 建中元年 追封父孝芳為開聖王尊母金氏為貞懿太后妻為王妃

○二年親祀神宮

七月發使按撫浿江以南州郡

○三年二月王巡幸漢山州移民戶浿江鎮

七月大閱於始林之原

○四年立社稷壇又修祭典

按十二月寅日新城北門祭八蜡豐年用太牢凶年用小牢立春後亥日明活城南

熊殺谷祭先農立夏後亥日新城北門祭中農立秋後亥日蒜谷祭後農立春後丑

日犬首谷祭風伯立夏後申日卓渚祭雨師立秋後辰日本彼游村祭靈聖三山五

岳已下名山大川分為大中小祭

○五年四月王欲遜位羣臣上表諫乃止

○六年正月王寢疾彌留乃下詔曰寡人本惟菲薄無心大寶難逃推戴作其卽位

居位以來歲不順成民用窮困此皆德不符人望政未合天心常欲禪讓退居于外

羣臣百辟每諫止未果如意因循至今忽遘疾疹不寐不興死生有命顧復何恨死

後依佛制燒火散骨於東海十三日薨上諡宣德國人立元聖王初惠恭王末年叛

臣拔扈王時為上大等首倡除君側之惡平亂有功及宣德王薨無嗣羣臣議欲立

王族子周元周元第在京北二十里會天大雨閼川漲不得渡議者曰人君大位有

關天命非人謨所及今日暴雨天其不欲立周元乎今上大等敬神德望素高有人

君之度於是衆議翕然遂立之旣而雨止國人皆呼萬歲

 

 

선덕왕본기(宣德王本紀)

 

휘는 양상(良相)이니 해찬(海飡) 효방(孝芳)의 아들이오 내물왕(奈勿王)10세 손이다.

어머니는 사소부인(四炤夫人) 김씨니 성덕왕(聖德王)의 따님이다.

왕비는 수족부인(具足夫人) 김씨니 각간(角干) 양품(良品)의 따님이다.

혹은 약간 의공(義恭)의 따님이라고도 함.

庚申 원년(唐 건중 元년, 서기 780) 아버지 효방(李芳)을 개성왕(開聖王)으로 봉()하고

어머니 김씨는 정의대후(貞懿太后)라 높이고 처()로 왕비를 삼았다.

2년 친히 신궁에 제사지냈다.

七월에 사신(使臣)을 내어 패강(渭江:대동강(大同江)) 이남의 주군(州郡)을 안찰(按察:자세히

살펴 조사함)하였다.

·

32월에 왕이 한산주(漢山州:광주)를 순행(巡幸)하고 백성을 패강진(浿江鎭:평양)으로

이민(移民)시켰다.

7월에 시림(始林) 벌에서 대열병식(大閱兵式)을 가졌다.

4년 사직단(社稷壇)을 세우고 제전(祭典:제사의 예절)을 올렸다.

상고하여 보건대 十二월 인일(寅日)에는 신성(新城)의 북문(北門)에서팔사(八蜡)

지냈는데 풍년에는 태뢰(太牢)를 쓰고 흉년에는 소뢰(小牢)를 썼다.

입춘(立春)후 해일(亥日)에는 명활성(明活城)의 남쪽 웅살곡(熊殺谷)에서 선농(先農:신농씨)

제사 지냈고 입하(立夏) 후 해일에는 신성 북문에서 중농(中農:사색(司嗇)을 가리킨 듯)

제사를 지냈으며, 입추(立秋)후 해일에는 산곡(蒜谷)에서 후농(後農:農을 말함)에 제사지냈고,

입춘후 축일(社日)에는 견수곡(犬首谷)에서 풍백(風伯:바람의 신)에 제사지냈으며 입하후

신일(申日)에는 탁저(卓渚)에서 우사(雨師:)에게 제사지냈고, 입추 후 진일(辰日)에는

본피유촌(本彼游村)에서 영성(靈星:별의 신)에 제사 지냈는데, 삼산(三山)과 오악(五岳)

이하 명산대천(名山大川)에서도 대중, 소제(大中小祭)를 나누어 지냈다.

 

()

팔사(八蜡) : 매년 설달에 지내는 여덟가지 교제(郊祭)를 말하는데 고대(古代) 중국

()나라에서 있었던 일이다.

첫째 선색(先嗇:신농씨(神農氏)) 둘째 사색(司會:후직(后稷)), 셋째 농(:전준(田畯)

권농관(勸農官)), 넷째 우표체(郵表:전준이 사는 잡으로 우정(郵亭)의 일도 겸하였다 함),

다섯째 묘호(猫虎:고양이는 쥐를 잡아먹고 호랑이는 멧돼지를 잡아먹기 때문이라 함),

여섯째 방(:제방(제방 즉 저수지), 일곱째 수용(水庸:수로(水路수로)), 여덟째 곤충(昆虫:

농사에 이로운).

태뢰(太牢) : 뢰는 짐승을 말하는데 태뢰는 제사에 소() 염소() 돼지()의 삼생(三牲)

통째로 씀을 이름.

소뢰(小牢) : 염소와 돼지의 두 가지만을 씀을 말함.

삼산三山) : 내력(奈歷) 골화(骨火) 혈례(穴禮)

오악(五岳) : 토함산(吐含山) 팔공산(八公山) 지리산(智異山) 태백산(太白山) 계룡산(舞龍山).

 

五년 四월에 왕이 손위(遜位:임금의 자라를 물려 줌) 코저 하니 군신(群臣)이 표(:표문)

를 올려 간하여 그만 두었다.

六년 정월에 왕이 병석에 누워 오래 일어 나지 못하니 조서(詔書)를 내리기를

과인(寡人:제후가 자기를 지칭하는 말)이 본래 부족함이 많은 사람으로 대보(大寶:왕위)에는

마음이 없었고 모든 사람들의 추대(推戴)를 저버리지 못하여 즉위는 하였으나 그 뒤로

풍년이 들지 못하여 민용(民用)은 궁곤(窮困)하니 이 모두가 나의 덕이 인망에 차지 못하고

정사는 천심(天心)에 합하지 못한 때문이니 마음만은 항상 선양(禪讓:왕위을 사양하여

전해줌)을 하고 밖에 나가 있고 싶었으나 군신과 백관이 매양 간하기에 뜻대로 하지

못하고 지금까지 미루어 왔는데 이제는 문득 병이 들어 눕지도 일어나지도 못하게 되었다.

그러나 죽고 삶이 명이있는 것인즉 무슨 유한이야 있겠는가?

내가 죽으면 불제(佛制)에 따라 화장하고 재는 동해에 뿌려주오 하고 十三일에 훙하니

시호를 선덕(宣德)이라 올리고 국인(國人)들이 원성왕(元聖王)을 세웠다.

처음 헤공왕 말년에 반신(叛臣:임금을 배반 한 신하)이 발호(跋扈) 하니 왕이 그때에

상대등(上大等)으로 있으면서 임금 좌우에 있는 나쁜 무리들을 제거하여야 함을 주장하여

난을 평정하고 공을 세웠었다.

선덕왕이 훙하고 아들이 없으니 군신들이 의논하여 왕의 족질(族歷)되는 주원(周元)

세우고자 하였다.

주원의 집은 서라벌북쪽 二十리 되는 곳에 있었는데 그때 마침 큰 비가 와서 알천(閼川)

넘쳐 건너지 못하게 되었다.

혹자가 말하기를 임금의 자리란 천명(天命)에 달렸지 사람의 힘으로 이루어 지는 것은

아니다 오늘 소낙비가 오는 것은 하늘이 주원을 세우고저 하지 않기 때문이 아닐까 지금

상대등 경신(敬信)은 덕망이 높아 임금의 풍도(風度)가 있는 사람이다.

하니 모든 사람의 의사가 일치하여 드디어 정신을 세우니 비가 그치고 국인들은 모두

만세를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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