雞林世廟上樑文
苗裔切追本之誠慨世次之己邈籩豆謹享祀之節瞻廟貌之維新洋乎如在翼然
有臨伏惟我先祖大輔公鍾元氣之會稟上智姿雞林報大人之生啟金櫝而乃出龍
顏喜令胤之賜御玉輦而親收因而改林名賴而定國號歷七葉而味鄒即真讓千乘
而婆裟踐跅若后稷之實啓周業類伯益之不受禹禪委政既專遂成一代郅降之治
得姓伊時乃見百世本支之休後因年代之迭遷終致廟享之久廢以子孫慕先之篤
情何忍於永祧顧公德入人者深體亦宜於崇報今此世廟創建之擧實是全族大同
之論風水俱佳就皇南里而擇之情理允協傍崇惠殿而開基助如雲既木石之爭湊
成之不日乃塗墍之己完日夕瞻依之有所庶輿情之少伸春秋享祀之以時宛先靈
之呢侍為酬都料匠之勞載唱兒郎偉之曲兒郎偉拋樑東養兒蒼翠入望中惟有山
色長依舊往劫悠悠仰太空兒郎偉拋樑西聖母祠前夕潮低古蹟蒼茫無問處行人
佇立一筇携兒郎偉抛樑南崇惠殿高佳氣含燕子亦知賀落成飛去飛來語呢哺兒
郎偉抛樑北脱解有陵草如織想像當時荷寵光靈應趍侍王之側兒郎偉拋樑上悅
有神來慰瞻仰此役知為天所佑秋來營室光常旺兒郎偉拋樑下芃芃黍稷連平野
秋登刈取薦馨香神鑑此誠應錫嘏伏願上樑之後香火靡替丹雘愈輝牲肥醴香奉
煙祀於年年歲歲竹苞松茂傳基於子子孫孫
始祖誕降後一千八百七十五年 己卯 七月十七日
後裔通政大夫行慶州郡守 翰殷 謹頒
계림세묘상량문(雞林世廟上樑文)
후손들은 세차가 멀어짐을 탄식하여 추본(追本)의 정성을 다하였고
묘체가 새로 지어짐에 향사의 절도를 근실하게 하네 존령이 결에 있는 듯
익연히 강림하고 계시네. 생각하건데 우리선조 대보공은 원기(元氣)를 모아
태어나셨고 상지(上智)의 자질을 부여 받으셨다. 계림은 대인의 탄생을
갚으려 금궤를 내었고 용안은 아들의 내려주심에 옥련을 타고 거두셨네
인하여 시림(始林)을 고쳐 계림(雞林)을 국호로 정하였다.
七대를 지나 미추왕이 즉위 하였고 천승을 사양하니 파사왕이 왕위에 올랐네
후직(后稷)이 주나라 터전을 닦은것과 같고 백익(伯益)이 우임금의 선위를
받지 않은 예와 같다네 년대의 바뀜으로 인하여 행사에 오래도록 폐하였다.
자손들은 선조를 추모하는 정이 독실하니 어찌 제사를 지내지 않겠으며 인덕이
사람들에게 베푼바 깊으니 마땅이 숭보함이 있을것일세.
이제 세묘를 창건한 일은 실제 모든 대종의 공론이었다.
흥수가 아름다우니 황남리에 땅을 택하였고 정리(情理)가 화합하니 숭혜전 옆에
터를 열었다.
구름같이 돕는 사람들은 목석을 다퉈 실어 날랐고 하루가 안되어 완성하여 도색을
이미 마쳤네. 아침 저녁으로 우러러 뵈오니 거의 정회를 실감하고 봄 가을로
향사 지낼 때 완연이 신령이 계시는 듯 장인들의 수고로움을 위로 하리
여기 아랑의 곡을 부른다. 아랑위 대들보 동쪽으로 던지니,
양아산이 검푸르게 눈앞에 들어온다. 다만 산색은 옛날 같지만 덧없는 세월을
느끼며 태공을 바라보네. 아랑위 대들보 서쪽으로 던지니 성모사앞에 저녁 노을이
저무네 옛 자취는 창망하여 물을데 없어서 지팡이 짚은 나그네는 외롭게 서 있구나
아랑위 대들보 남쪽으로 던지니 승혜전 높은 대 아름다운 기운이 넘친다.
제비도 또한 낙성을 축하하려 날아서 오가며 지지베베 속삭이네 아랑위 대들보
북쪽으로 던지니 탈해왕릉묘에 풀이 무성하네 당시 은총입은 영광을 생각하면
응당 왕 곁에서 모시고 있을 것이네. 아랑위 대들보 위로 던지니 신이 강림
하는 듯 우러러 보네 이 역사는 참으로 하늘이 도운 것이니 가을이면 제실에
광체가 있을 것일세. 아랑위 대들보 아래로 던지니 무성한 기장이 평야를 덮었구나
가을에 베어서 향으로 올리니 신이 감복하여 큰 복을 내릴것일세.
생각컨대 상량한 후에 제사를 잊지 말고 단청은 더욱 빛이 날것이며 희생과
향촉으로 해마다 향사받들 것이며 무성한 대나무와 소나무는 먼 자손의 터전으로
전할 것 일세.
시조 탄강후 一八七五년 기묘 七월十七일에
후예 통정대부 행경주군수 한은(翰殷) 삼가짓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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