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명/崇惠殿

계림비각기(雞林碑閣記)

云石 2020. 5. 9. 16:54

雞林碑閣記   生員崔南復


故新羅國月城下葱蔳草樹之間小屋子一朝突兀其為制一極八面而甚緻麗中有
三尺短碑篆曰雞林金氏誕降遺墟此則雞林而閣之北古有標石存氏金者言始祖
誕降實其地彷徨指點雞鳴櫝掛之處亦可想得也噫天地間混淪精粹胚胎氣母居
然成形者此太初成人之道而至若雞之在傍翼鳴使國人知之者又何理歟雞鳴司
丑丑即東方始明之時也羅氏王朴昔百十四年大樸猶存金氏受國歷王三十八世
典章文物稍稍備具東方於是乎始明矣豈天降真人將以闡人文而使神雞先告其
祥者耶金氏以閼智為始祖而閼智之在於脫解乙丑事亦靈異哉自乙丑至聖朝壬
戌千八百二十年之間荒凉古蹟宛如昨日金氏之行過是墟者瞻慕之敬愛之有如
周之平林漢之大澤咸以為生民之地興王之跡不可泯滅合謀收物立碑以記其事
愚於是尤有感焉恭惟我大王大妃以女中堯舜臨簾聽政扶我億萬世之宗祊而實
維神聖之孫誕降亦於乙丑而過此數年寶甲重回上而計之則去始祖生年為三十
年乙丑金雞毓祥前後是年而箕東精淑之氣鐘在是墟者往往著驗如此宜乎金氏
之表而美之而不先不後必值今日者又豈非天人默應之道耶銘其碑者巡相公南
公輸也書其銘者府尹崔公獻重也篆以額之者姓孫丹陽倅金君熙周也謁其銘與
書者前參奉成杰也成杰謂碑而無閣為風雨所磨滅於是與時參奉昌迪前參奉宅
礪士人永奎竭力幹事始於壬戌孟冬翼年春功告訖皆篤於報本者也此足以為之
記閣



계림비각기(雞林碑閣記)
생원(生員) 최남복(崔南伐)


옛 신라극 월성(月城) 아래에 초목이 우거진 숲 사이에 작은 집 한 채가
일조(一朝)에 우뚝 솟았으니 그 제도는 한 마루되 팔면(八面 : 八角)으로
심히치밀하고 화려하다.
속에는 삼척(三尺) 단비(海碑)가 있어 전자(篆字)로 계림김씨탄강유허(雞林
金氏誕降遺墟)라 새겨져 있다.
이곳이 바로 계림으로 각(閣)의 북쪽에 옛날에는 표석(根石)이 있었는데 김씨
(金氏)들의 시조가 탄강하였다는 곳이라 하여 방황(彷徨) 지점(指點)하였던 곳이
바로 여기이며 닭이 울고 궤(櫃)가 얹어졌던 곳을 상득(想得)할 수 있을 것같다.
희(噫)라! 천지가 혼돈(混沌 : 천지 개벽초 천지가 아직 갈라지지 않았던 모양)
한데 정수(精粹 : 깨끗한것)가 기모(氣母)에게 배태(胚胎)되어 서연(巨然)히 형체(形體)를
이루었던 것은 태초에 인류가 태어난 이치이지만 닭이 곁에서 울어 나라 사람들에게
알림에 있어서는 이 또한 어떤 이치였을까?
닭은 들어 축시(丑時)를 말는다 하니 축이란 동방이 처음 밝아오는 시각이다.
신라는 박씨(朴氏)와 석씨(昔氏)가 왕(王)을 한 것이 一百十四년이나 순박(厚朴)하고
미개(未開) 하였던 바가 아직 남아 있다가 김씨(金氏)가 나라를 이은 지三十八十
동안에 전장(典章)과 문물이 차차 갖추어져 동방이 이때부터 개명(開明)하기
시작하였다.
어쩌면 하늘이 진인(眞人)을 내려보내 장차 인문(人文)을 열어 주려고 신계(新雞)로
하여금 그 상서(祥瑞)를 미리 알림이 아니었을까?
김씨(金氏)는 알지(閼智)로 시조를 삼고 있는데 알지의 탄강이 탈해왕(脫解王)
을축(乙丑)년에 있었으니 기이한 일이다.
을축(乙丑)으로부터 성조 (순조純祖) 임술(壬戌)까지 千八百二十년 동안(天七百三十八
年이 됨) 황량(荒凉)한 고적(古蹟)으로 남아 있어 김씨로 이 터를 지나는 사람마다
첨모(瞻慕)하고 정애(敬愛)하여 주(周)의 ①평림(平林)이나 한(漢)의 ②대택(大澤)과 같이
생민(生民)의 땅이요 흥왕(興王)의 자취이니 민멸(泯滅)하여서는 아니 되기에 서로
모의하고 자금을 거두어 비를 세우고 그 사실을 기록하니 나는 이것을 보고 더욱
느낀 바가 많다.
우리 대왕대비(大王大妃:貞純王后)는 여중요순(女中堯舜)으로 수렴청정(垂簾聽政)을
하여 우리 억만세(億萬世) 종방(宗彷:종사와 같은 말)을 물든 분인데 역시 신성(神聖)의
손(孫:김알지 후손)으로 탄강(誕降)이 또 을축(乙丑)년이요 수 년만 지나면 회갑이
돌아오는데 위로 계산하여 보면 시조의 생년으로부터 ③三十년 을축(乙丑)이 되므로
금계(金雞)의 육상(毓洋)이 전후가 모두 이 해이니 동방의 정숙(精淑)한 기운이
이 터에 모여 있다가 왕왕이 효험(效驗)을 나타냄이 이와 같을진대 金씨들이 표석(表石)을
세워 찬미(讚美)함이 마땅한 일이요 또 앞서지도 뒤지지도 않고 꼭 오늘에 당하여서
그 일을 하니 어찌 천인(天人)이 묵응(默應)함이 아니겠는가?
비명(碑銘)을 쓴 사람은 순상공(巡相公:관찰사) 남공철(南公轍)이요 글씨를 쓴 사람은
부유 최공 헌중(崔公獻重)이요 전자로 액(額) 글씨 쓴 사람은 자손인 단양(丹陽) 군수
김군 희주(熙周)요 명과 글씨를 청한 사람은 전 참봉(參本) 성걸(成本)이다.
성걸이 비를 세우고 각이 없으면 풍우(風雨)에 마멸(磨滅)이 된다하여 현참봉 창적(昌迪)﹐
전 참봉 택려(宅礪) 사인(士人) 영규(永奎)등과 갈력간사(竭力幹事)하여 壬戌年 맹동(孟冬)에
시작하여 다음해 봄에 끝맺으니 모두 보본(報本) 하는데 독실한 사람들이다.
이는 충분히 비각에 적어 둘만한 일이다.



주(註)
평림(平林) : 제곡의 첫째 비 강원이 들판에 나가다가 거인의 자취를 밟아 마음이
             혼혼하게 인도의 감각이 있었으므로 임신하여 아들을 낳았기에
             상서(祥瑞)롭지 못한 것이라 하여 평림에 버렸기에 이름을 기(棄)라
             하였으니 주나라의 시조 후직이다.
대택(大澤) : 한(漢)의 고조(高祖) 패풍읍중양리(沛豐邑中陽里) 사람으로 성은 유씨(劉氏)
             이고 이름은 방(邦) 자는 계(季) 아버지는 태공(太公) 어머니는 유온(劉媼)이다.
             유온이 일찍 매력 언덕에 쉬어 놀다가 꿈에 신(神)을 만났음에 이 때 우레와
             번개가 회명(晦冥)한지라 태공이 가서 보니 그 위에 교룡이 나타났다.
             그 후 유온은 임신하여 고조를 낳았으므로 고조의 모양이 융준용안(隆準龍顔)이라 하였음
三十年乙 : 대보공 탄강하신 을축년으로부터 정순왕비의 보갑을축에 이르면 二十九회의
            을축이 되니 그 사이가 千七百四十년이 됨.



김씨의 後裔로 한자 한글자 짚어서 개재 합니다.

오탈자는 지적해 주시면 수정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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