憲安王本紀
諱誼靖一云祐靖神武王弟母金氏阿飡忠恭女
戊寅二年 唐大中十二年 正月親祀神宮
四月教修完防堤勸農
○四年九月王會羣臣於臨海殿王族膺廉年方十五歲預坐焉王欲觀其志問曰
汝遊學有日得無見善人者乎答曰臣見三人一勳閥子弟而不先人自下一家富
而被服不侈一勢榮而驕氣不形臣竊以為善人王默然與妃語以長女出降焉
是為寧花夫人
○五年正月二十九日王薨上諡憲安景文王嗣位蓋因顧命也先是王寢疾謂左右曰
寡人無男子有女吾邦故事雖有善德真德二女主然近於牝雞之晨不可法也甥膺廉
年雖幼有老成之德卿等立而事之至是嗣位葬憲安王於孔雀趾 今西岳
헌안왕본기(憲安王本紀)
휘는 의정(誼靖) 또는 우정(祐靖)이니 신무왕의 아우이다.
어머니는 김씨니 아찬(阿飡) 충공(忠恭)의 따님이다.
戊寅 2년 (당 대중12년 서기 857년) 정월에 친히 신궁에 제사를 지냈다.
4월에 제방을 튼튼히 보완하고 농사에 힘쓰라고 고시하였다.
○4년 9월에 왕이 군신(群臣)을 임해전(臨海殿)에 모이게 하니 왕족인 응렴(膺廉)이
나이 이제 열다섯 살로 그 자리에 참여하였다.
왕이 그 뜻을 보고자 물기를 “네가 서울에 유학(遊學)한 지가 상당히 오래 되었는데
선인(善人)을 만나본 일이 없느냐?” 하니 대답하기를 “신이 세사람을 만났는데 한 사람은
훈벌(勳閥 )의 자제(子弟)인데도 남앞에 나서려 하지 않고 스스로 낮주고 있었으며 한
사람은 집안이 부호인데도 의복이 사치스럽지 않았으며 한사람은 권세와 영화있는
집안이었으나 교만한 기색이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신은 속으로 착한 사람이구나 하고 여겼습니다.” 하니 왕이 묵연(默然)하였다가
왕비와 무슨말을 주고 받더니 장녀를 하가(下嫁:공주를 신하에게 시집을 보냄) 시키니
이 이가 영화부인(寧花夫人)이다.
○5년 정월 29일에 왕이 훙하니 헌안이라 시호를 올리고 경문왕이 이으니 고명(顧命)에
따라서이다.
이에 앞서 왕이 병이 더치자 좌우에게 이르기를 “과인이 아들은 없고 딸만 있는데 우리나라
고사(故事)에 비록 선덕(善德)과 진덕(眞德)의 두 여주(女主)가 있기는 하였으나 암탉이
새벽에 우는것 같아서 본받을 일이 못된다.
내 사위 응렴은 나이는 비록 어리나 노성(老成)한 덕이 있으니 경 등은 그를 세우고
잘 받들지어다.”
하여 이 때에 왕위를 계승하게 된 것이다. 헌안왕은 공작산(孔雀山)에 장사지냈다.
(지금의 서악(西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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